VIP뉴스

[최병헌 금융칼럼] 초고령사회가 바꾸는 장기요양 산업과 돌봄 시스템

“요양원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최병헌ㆍ경영학박사 | 기사입력 2026/05/11 [22:10]

[최병헌 금융칼럼] 초고령사회가 바꾸는 장기요양 산업과 돌봄 시스템

“요양원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최병헌ㆍ경영학박사 | 입력 : 2026/05/11 [22:10]

▲ 이미지 생성: 챗 GPT    

 

[최병헌ㆍ경영학박사] 요양원, 돌봄의 공간인가 종착지인가

“요양원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장기 요양원을 둘러싼 인식은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돌봄의 공간이라기보다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장기 요양원은 본래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가.

 

‘돌봄’이 사라진 공간

필자는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을 위해 장기 요양원에서 하루 8시간씩 20일간 실습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90세가 넘은 어르신들. 몸은 자유롭지 못한 채 하루 대부분을 누워 있거나 앉아서 보내고, 식사는 죽으로 겨우 이어가는 일상. 말은 줄어들고 표정은 무뎌지고, 시간은 흐르지만 삶의 온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준비해야 할 노후의 모습인가?”

 

장기 요양원의 본래 목적은 분명하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전문적인 돌봄을 통해 기능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고, 가능한 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요양원은 회복의 공간이 아닌 ‘정체의 공간’이 되었고, 삶을 이어가는 곳이 아닌 ‘시간을 버티는 곳’이 되어버렸다.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해결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은 이미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노인 돌봄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는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방문요양, 방문간호, 시설입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가와 국민이 함께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도입 취지는 분명하다. 급격한 고령화 대응,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 증가 대응, 그리고 가족 돌봄 기능 약화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다.

 

하지만 제도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는 이미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 경기 부천의 한 요양원에서는 80대 입소자가 4층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치매 환자가 방치된 상태에서 추락해 중상을 입었고, 결국 요양원장과 요양보호사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도의 신뢰다. 최근 감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학대가 발생한 요양기관 50곳이 오히려 ‘최우수 평가’를 받고 인센티브까지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단순한 운영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좋은 요양원인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지금의 장기 요양원 문제는 개별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가 현실에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고령화 속도, 인력 부족, 지역 불균형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현재의 시스템은 이미 한계에 근접해 있다. 결국 정부만으로 모든 돌봄 수요를 책임지기에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민간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장기요양보험은 공공이 설계한 제도지만, 현장의 운영은 이미 상당 부분 민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단순한 ‘역할 분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요양원은 돌봄이 아닌 수익 중심의 운영으로 흐르며 인력은 최소화되고, 케어는 형식화되고, 결국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르신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 결과 요양원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지고 있다.

 

동시에 폭증하는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공공성과 전문성을 갖춘 민간의 참여 확대,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 그리고 현실적인 정책금융 지원 체계 마련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존재한다. 공공이 모든 돌봄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결국 현장을 바꿀 수 있는 주체 또한 민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철학으로 운영되는 민간인가에 있다.

 

장기 요양원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의 장기 요양원은 단순히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로 양적 확대가 아닌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① ‘생존’이 아닌 ‘삶’을 돌보는 공간

단순한 식사와 위생 관리가 아니라 정서, 관계, 일상까지 포함하는 돌봄이 필요하다. 어르신이 “살아 있는 시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② 회복과 유지 중심의 케어

장기 요양원은 단순 수용시설이 아니라 기능 유지와 재활, 인지 자극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③ 사람 중심의 운영

시설의 수준은 결국 사람에서 결정된다. 진정성 있는 직원, 어르신을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문화. 이것이 요양원의 본질이다.

 

④ 가족 같은 돌봄 환경

요양원은 ‘보내는 곳’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곳’이 되어야 한다. 어르신이 낯선 시설이 아니라 익숙한 삶의 연장선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장기 요양원의 미래는 ‘철학’에 달려 있다

초고령사회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장기 요양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인프라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어떤 철학으로 운영되는가가 핵심이다.

 

앞으로의 장기 요양원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변화는 제도가 아니라 현장을 만드는 사람에 의해 완성된다.

 

필자 역시 언젠가 어르신을 가족처럼 돌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장기 요양원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속 장기 요양원의 미래는 결국 ‘얼마나 오래 살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가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기고 필자 의견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병헌ㆍ경영학박사 / 비에이치파이낸스컨설팅 대표 

 

이 기사 좋아요
요양원, 노인복지 관련기사목록
  • 도배방지 이미지